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醫史學으로 읽는 近現代 韓醫學 (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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醫史學으로 읽는 近現代 韓醫學 (417)

1950年 四月五月 合倂號로 간행된 『東洋醫學』
“한의학의 재건을 위해서 노력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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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일 교수 경희대 한의대 
의사학교실

 

부산광역시에 살고 계시는 故 김재성 선생님의 아드님이신 김원회 교수님(前 부산대 의대 산부인과학 교수)을 뵙기 위해 올해 6월 내려갔다가 우연히 헌책방에 들러서 1950년 四月五月合倂號로 간행된 『東洋醫學』을 구입하게 되었다. 

故 金在誠 先生(1907∼1985)은 서울 출신으로 대구광역시에서 星南한의원을 운영했다. 金在誠 先生은 동방의학회에서 부회장을 역임하였고, 1954년 『醫林』에 「중풍의 병리적 고찰」, 「중풍의 병리학적 고찰」 등의 논문을 계속 발표하였다. 또한 1955년 『東洋醫藥』에 「傷寒要領」이라는 제목의 시리즈 연재 논문을 연이어 발표한다. 학술적 활동을 활발히 하였던 것이다. 그는 中風病과 傷寒論에 대해 전문적 견해를 가지고 연이어 연구를 거듭하여 일가를 이루었다.

그의 아드님 김원회 교수는 서울에서 경기고를 졸업한 후 서울대 의대에 56학번으로 입학한 후 미국에서 전문의를 마치고 귀국해 부산대 의대에서 산부인과 교수를 하고 정년퇴임하였다. 연세가 83세에 달하심에도 영페이스에 생각도 젊으셨다. 방문하여 김원회 교수님을 뵙고 이 자료를 헌책방에서 사게 되니, 마치 故 김재성 선생님께서 방문선물로 나에게 이 1950년 『東洋醫學』 잡지를 주신 것이 아닌가 전율이 생겼었다.

이 잡지는 1950년 6월25일 터져버린 한국전쟁이 일어나기 세달 전인 3월31일에 간행되었다. 내용은 목차를 보니 卷頭言(金和), 醫師 및 齒醫師法案이란?(編輯部), 第二次國會議員總選擧를 앞두고(東洋醫學會), 傷寒新論 一回(조헌영(趙憲泳), 人蔘에 對한 史的考察(申佶求), 重要藥草栽培法(是空居士), 醫協聲名書는 暴言-慶北漢醫聯서 反駁建議, 東西對照治療學(姜弼模), 東洋醫學檢討의 必要性(韓啓澤), 基礎漢方藥物學總論炒(慶南漢醫藥會編), 그동안의 消息, 讀者의 소리, 編輯餘筆 등의 순서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第二次國會議員總選擧를 앞두고’라는 제목의 글에서 당시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었던 한의계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지면 관계상 이 부분만 소개하고자 한다.

“…(상략)…우리는 眞理와 正義의 嚴肅한 判斷 아래 夢寐에서도 갈망한 한의학의 科學化와 再建設의 曙光이 暗雲寒雨를 除掃하고 中天에 恍惚하는 날을 위하여 敢然히 억센 現實과 싸워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한의학재건의 矜持와 自負를 歷史보다 現實에서 現實보다는 將來에서 이미 萬邦에 亨通하는 大韓國民의 巨步와 아울러 우리는 떳떳이 뽐내고 내세워야 할 것입니다. 

이제 第二次總選擧를 目前에 앞두고 우리들 자신이 선출해야 할 國會議員의 質의 良否가 이나라 運命을 左右할 것이라는 엄연한 사실과 科學化된 한의학재건의 偉業을 완수하는데에 크고 큰 영향이 있다는 사실을 직시하여야 되며 選擧에 臨할 때 一切의 情實關係를 超越하여야 할 것입니다. 

全國 坊坊曲曲에 散在하여 수많은 사람을 상대하고 있는 우리들은 우리가 갖고 있는 全力量과 우리들이 발휘할 수 있는 全能力을 다하여 國家와 民族을 위하여 한의학의 재건에 공헌할 수 있는 정신과 인격과 능력의 제반조건이 具備한 擧族的인 人材의 選出을 게을리하여서는 결단코 안될 것입니다. 

우리들은 오로지 한의학을 愛護育成하며 國家와 民族을 위하여 良心에서만 行動함이 우리들을 光明으로 이끌어가는 대로라는 것을 거듭 강조하여야 하며 眞正한 選良의 出陣을 積極援助하여야 합니다.”

1951년 전쟁기간 동안 부산에서 열린 국회를 통해 한의사제도가 입법되어 통과되게 되는데 이미 이 시기 한의사제도의 입법을 통한 한의학의 발전을 위한 노력들이 성숙되고 있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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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한국전쟁 직전에 간행된 ‘동양의학’ 사월오월 합병호.

 



한의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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