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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적 유물론 또는 비통일적 집합체로서의 한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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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적 유물론 또는 비통일적 집합체로서의 한의학

김종영.jpg
김종영 경희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하이브리드 한의학’ 저자)

 

인간의 관습적인 사고는 얼마나 바꾸기 힘든가. 한의학은 음양오행에 기원한 것도 아니고 변증론치로 환원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한의학을 패러다임으로 보는 것은 한의학을 특정 세계관, 우주관, 인체관으로 이해하는 것이고 이는 한의학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것이다. 그럼 한의학은 도대체 무엇인가? 한 마디로 말하면 한의학은 집합체 또는 세트들의 세트들이다. 지난 칼럼에서 들뢰즈가 인용한 집합체(assemblage)는 다른 말로 다양체(multiplicity)로 이해될 수 있으며 이는 친자관계가 함축하는 뿌리나 연속이 아니라 다양하고 이질적인 요소들이 리좀을 통해 공생을 이룸을 의미한다. 
한의학의 성장과 진화를 들뢰즈식으로 이해하면 한의학은 어떤 기원에 뿌리두지 않고 과학, 양의학, 국가 등과 연합하여 새로운 다양체를 이루며 공생 또는 공-기능을 하는 집합체를 만들었다. 집합체의 생산에 있어 부분과 전체에 대한 이해는 중요하며 이는 또한 패러다임론의 반박에 있어서도 중요하다. 새로운 집합체 혹은 다양체의 형성에 있어 부분들은 기원에 뿌리를 두지 않고 연결된다는 점이 중요하다. 들뢰즈와 가타리의 다음의 말은 전체와 부분의 관계에 있어 중요하기 때문에 인용할 가치가 있다: “우리는 더 이상 예전에 존재했던 태초의 전체성을 믿지 않는다. 또한 우리는 미래에 언젠간 도착할 마지막 전체성도 믿지 않는다. 우리는 울퉁불퉁한 모서리들, 이질적인 요소들을 제거하여 얻은 조화로운 전체를 목표로 하는, 따분하고 색채 없는 진화의 변증법으로 채워진 회색의 전체를 더 이상 믿지 않는다. 우리는 단지 주변적인 전체성들을 믿는다. 우리가 만약 다양하게 분리된 부분들과 함께 전체성을 발견한다면, 그것은 부분들을 전체화하지 않는 특수한 부분들의 전체이다. 이것은 통합되지 않는 모든 특수한 부분들의 통합이다. 또한 이것은 분리되어 새롭게 만들어지는 부분들이 덧붙여지는 것이다.”    

한의학은 침, 한약 등 무수한 하부 세트들의 집합체
집합체는 전체성으로 통일되지 않는 부분들로 이루어져 있고 다시 이 부분은 바깥으로 열려 있어 다른 부분들이 새롭게 추가될 수 있다. 여기서 이 어셈블리지(집합체)는 궁극적인 목적이나 전체성을 가지고 있지 않으며 다방향으로 진화하여 자신의 영역을 넓힐 수 있다.
마뉴엘 데란다(Manuel DeLanda)는 집합체라는 개념을 좀 더 쉽게 설명하기 위해서 역사학자 페르낭 브로델을 인용한다. 브로델은 “사회는 세트들의 세트들(sets of sets)”이라고 말하는데 이 ‘세트들의 세트들’이 집합체(또는 어셈블리지)다. 한의학의 세트들의 세트들은 무엇인가? 근대한의학은 무수한 하부 세트로 이루어져 있는데 침, 한약, 이론, 한의사, 의서, 병원, 정부조직, 학회지, 국제 네트워크 등을 포함한다. 곧 한의학의 ‘세트들의 세트들’은 침의 세트들, 한약의 세트들, 한의사 집단의 세트들, 한방병원의 세트들, 한의학 관련 정부조직의 세트들, 한의과대학의 세트들, 한의학 실험실의 세트들, 한의학 국제네트워크의 세트들 등이 모여서 더 큰 세트들로 이루어져 있다. 중요한 점은 이 세트들의 구성이 열려 있다는 것으로 언제든 이 세트들은 확장될 수 있다. 
가령 한의학 관련 정부조직의 세트들은 1990년대 중반부터 시작하여 한의약정책관, 국립한의학전문대학원, 대통령한의주치의, 국립중앙의료원 한방진료부 등을 포함한다. 이 예시에서 알 수 있듯이 한의학의 세트들은 단일한 하나의 논리와 관점에 의해 일관되게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다른 시간과 이질적인 진화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비통일적 집합체’다. 여기서 하나의 세트들이 다른 세트들과 관계는 있지만 환원되지 않는다는 점이 중요하다. 패러다임론에서는 세계관이 통일적으로 과학자들의 행위를 안내한다는 점에서 환원론적이지만 창조적 유물론은 이 세트들의 다원성을 강조한다. 세트들의 세트들이라는 개념은, 한의학 정부조직의 세트들의 예에서 알 수 있듯이, 항상 이 세트들이 외부로 확장될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가령 근대한의학은 과학과 양의학을 새롭게 포용하고, 이들 영역에서 개발한 처방과 기구를 사용하는데 이는 한의학의 세트들이 외부로 확장되어 왔음을 뜻한다.   

치료기술 개발 등 다양한 창조로 한의학 발전 이뤄
집합체(어셈블리지) 또는 세트들의 세트들이란 개념이 창조적 유물론에서 왜 중요한가? 그것은 우리가 한의학이라고 부르는 의료의 세트들을 패러다임과 같은 세계관이나 인식론으로 환원할 수 없고 한의사를 포함한 다양한 행위자들에 의한 창조의 가능성을 열어주기 때문이다. 가령 음양오행론과 같은 이론 없는 한의학도 가능한데 이것은 현재 일본 한의학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기도 하다. 창조적 유물론은 반환원론을 의미하는데 이는 거시적 환원론(macro-reductionism)과 미시적 환원론(micro-reductionism) 모두를 겨냥하고 있다. 미시적 환원론을 막기 위해 데란다는 ‘창발적 속성들’(emergent properties)이라는 개념을 동원하는데 이는 현재 존재하지 않는 전체의 속성들이 부분들의 상호작용을 통해 새롭게 창출된다는 것을 의미이다. 가령 현대에 개발된 약침이나 레이저침은 창발적으로 침의 영역을 확장시켰다. 부분적인 한의학 치료나 기술들은 한의학 전체에 환원되거나 뿌리는 두지 않고 예측할 수 없이 다양한 방향으로 역동적으로 만들어진다. 
우리가 이러한 관점을 취한다면 한말부터 지금까지 이어온 동도서기(東道西器)론은 허구에 지나지 않는다. 동도서기론은 ‘물질’이 강한 서양에 대항하여 동양의 우위를 ‘정신’으로부터 가져오려는 방어적 이분법이다. 한의학과 양의학/과학의 만남은 정신 대 물질의 만남이 아니라 집합체 대 집합체의 만남이다. 이 둘 모두를 통일되지 않는 세트들로 보고 부분들의 결합이 가능하다면 한의학과 양의학/과학의 결합은 논리적으로 그리고 현실적으로 가능하다.
창조적 유물론은 한의학의 창조적 생산과 진화를 잘 설명해 준다. 창조적이라는 말은 기존의 사회-물질세계로 환원할 수 없는 새로운 무엇이 생산된다는 의미이다. 창조는 그 말 자체로 예측불가능하기 때문에 특정한 방향성이 없고 특수한 방식으로만 규정할 수 없다. 팍스와 알드레드는 창조성을 “인간과 비인간의 관계에서 이루어진 집합체에서 행위하고 감각하고 욕망하는 혁신적 능력을 생산하는 영향력의 열린 흐름”으로 정의한다. 가령 한의학의 과학화는 실험실, 실험기구, 과학자와 같은 새로운 물질적-인간적 집합체를 동원하고 과학을 실행하고 욕망함으로써 새로운 영향력을 생산하고 퍼뜨린다. 창조적 생산물은 그 자체로 하나의 영향력이 되며 새로운 창조성을 이끈다. 이 창조성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맥락 속에 존재하는 집합체에 상관적으로 작용하며 새로운 기회에 열려 있다.
창조적 유물론에서 창조성은 다양하다. 한의학의 다양한 유파들은 다양한 치료 기술을 개발했고 이들은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했다. 창조성이란 물질적 창조성일 수도 있고 이론적, 조직적, 법률적 창조성일 수도 있다. 세트들의 세트들 또는 집합체의 창조는 그만큼 하나의 창조가 아니라 ‘다양한 창조들’을 포함하며 하나의 논리에 의한 창조가 아니라 다양한 열린 논리의 창조에 의해서 가능하다. 즉 창조적 유물론은 사회-물질세계에서의 다양한 방식을 통한 열린 창조들을 의미하며 세트들의 세트들이 어떻게 새롭게 생산되는지를 이해하려는 시도이다. 

창조의 과정, 각종 저항으로 인해 쉽지만은 않아
하지만 한의학의 창조는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창조의 과정에서 ‘저항’에 부딪히는데 이는 양의학의 저항일 수도 있고, 국가의 저항일 수도 있고, 진료실이나 실험실 안에서의 개념적, 물질적, 조직적 저항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한의계는 ‘의료기사지도권’을 둘러싸고 양의학의 거센 저항을 받아 왔다. 한의사가 자신의 진료 행위를 보다 더 창조적으로 생산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법적 저항과 양의학의 저항을 뚫어야 한다. 한의사는 자신이 당면한 여러 난제를 풀려고 할 때 다양한 형태의 ‘저항’에 부딪힌다. 이 말은 곧 한의사 뜻대로 한의학을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이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한의사는 개념을 만들기도 하고 도구를 만들기도 하고 단체를 만들기도 하고 국가와 연대를 하기도 하고 과학과 양의학을 끌어들이기도 한다. 저항은 소위 과학에서 말하는 ‘소음’을 일으키는데 이는 문제가 깨끗하게 해결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한의사는 다양한 저항을 극복하고 문제의 해결에 종종 도달하는데 이를  안정화(stabilization)라고 한다. 이러한 방식으로 한의학은 새로운 ‘비통일적 집합체’를 ‘성취’한다. 
한의학을 비통일적 집합체 또는 비통일적 세트들의 세트들로 본다면 한의사들의 모든 창조적 활동들은 논리적으로 가능하고 현실적으로도 정당하다. 한양방협진을 통한 한의학과 양의학의 만남, 새로운 침술과 한약의 개발, 정부 조직 내에서의 한의학 분야의 지속적인 진입, 국가의료보험체계내에서의 한의학 영역의 확장, 한의학의 과학화, 산업화, 세계화 등은 한의학의 비통일적 집합체로서의 성장과 진화를 보여주는 좋은 예들이다. 따라서 한의사 집단이 하는 모든 활동들은 의미 있고 정당화된다. 한의사들이여, 패러다임론을 버리고 창조적 유물론으로 한의학을 새롭게 바라보자! 창조적 유물론이 한의학을 해방시키리라!   
 (이 칼럼의 일부 내용은 필자의 책 <하이브리드 한의학>에서 가져왔다.) 
 
 
한의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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